CRO 업계의 잦은 이직 문화
이직이 잦은 CRO업계에서 본인의 상사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뀌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나의 경우엔 사수가 내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3주 정도 이후에 퇴사를 하였는데, 이때는 정말 멘붕이였다. 이제 조금씩 친해지고 일을 배우려고 하는 찰나에 갑자기 사수가 메신져로 "By the way, XXX is my last day"라고 말을 던졌다 (WTF?!).
무슨 퇴사 통보를 이렇게 케쥬얼하게 하는지 당시에는 적지 않은 충격이였다. 그땐 내가 업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누가 케어를 해주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같은 팀의 다른 팀원을 사수로 붙여주어서 혼란한 시기를 비교적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입사를하고 얼마 되지않아서부터 이런 CRO의 이직 문화를 체험하고나니, 그 뒤에 사람들이 오고 가는걸 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되었다. 이제 일을 시작한지 2년이 조금 안되는 시기가 되었는데, CRO 산업자체가 돌아가는 구조를 이해하게 되니 그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이해가 되고, 어찌보면 이직을 안하는게 바보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도 생각이 바뀌었다.
CRO업계의 잦은 이직문화의 배경
CRO는 제약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타 CRO와 Bidding- 말그대로 경매를 하는 구조여서, 가격경쟁을 하기 때문에 마진이 크게 남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CRO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제약회사만큼 후한 연봉, 보너스나 베네핏을 제공을 하지 못하기에 CRO에서 경력이 조금이라도 쌓인 사람들은 많이 제약회사로 이직을 한다. CRO 회사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제약회사처럼 대우를 못해주니 이사람들 이직하기전에 뽑아먹을만큼 뽑아먹자라는 생각이 큰 것 같다. 제약회사에 비하면 CRO의 업무강도도 세고, 연봉도 박봉이라 이런 악순환은 반복되어서 실력있고 경력있는 사람들이 이직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물론 평범한 직장에 비하면 연봉이 결코 나쁘지는 않지만, 통계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그 비교대상이 IT기업의 데이터사이언티스트나 SW 엔지니어급이 비교 대상이기에 CRO가 그리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 수 있다.
놀랍게도 이런 구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비자 문제 해결이 필요한 외국인 인력의 유입과 가혹한 신입 구직시장의 문제 덕분이다. 신입 공고를 내면 못해도 수백개의 레쥬메가 시스템으로 들어온다고 오는데 그 사람들을 HR Call->Hiring Manager Filtering->Final로 추려내고 사람을 구할만큼 신입 공급이 많다. 그래서 초보 인력을 수급하는 것에 회사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렇기에 회사도 까다로워져서 스팩이 좋고 빨리 일을 배울 수 있을 만한 사람을 뽑는다. 회사도 이 사람들이 오래 일을 할 것이라고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다만 경력자들이 자꾸 회사를 나가서 당장 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회사입장에서는 그렇기에 이 사람들의 커리어 성장이나 교육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Hands-on으로 알아서 배우고 살아남으라는 마인드이다.
처음 잡을 잡는 외국인 구직자 신분에서는 일만 시작할 수 있으면 감사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서 내 시장가치를 자연스레 알게되는데 이때부터 불만이 점차 쌓이게 된다. 한 예로, 최근에 회사에서 Annual Bonus를 제공했는데 그 해 퍼포먼스가 좋아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금된 금액을 확인하고 정말 안 주는만 못한 보너스를 줘서 빈정이 상해 보스에게 한번 따져봤다. 보스도 이렇게 적게 나올지는 몰랐고, 자신도 황당하다는 반응이였다. 이때부터 나도 회사에 대해 정이 떨어져서 이직 준비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많은 경력있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는데, 이런 보상체계에 불만을 가져서 떠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팀장의 돌연 퇴사와 그 영향
탈주를 꿈꾸고 있던 와중에 팀 리드가 1주일 노티스를 주고 퇴사를 통보했다. 고생했던 동료와 이별을 하는 아쉬움과 아뿔싸하면서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이제 회사생활이 더 힘들어지겠구나 하는 것이였다. 퇴사한 팀 리드는 지금 회사에 5년 가까이 일을 했고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해서 굉장히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경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매니징 스킬도 뛰어나서 팀원들이 모두가 다 좋아하는 매니저였다. 프로젝트의 책임을 스스로가 지려고 했고, 팀원들이 고생을하면 같이 고생을하는 드문 매니져여서 팀원들의 신임을 한껏 받고 있던 사람이였기에 이렇게 퇴사 통보를 하니 우리 팀원들은 다 같이 혼란에 빠졌다.
기어코 우리 팀이 타 팀에 흡수된다는 소식이 들렸고 다시 새 매니저에게 Credibility를 쌓아야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지금 회사에서 배울 것들이 많아서 올해 영주권도 들어가는 참에 조금 더 있으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나마 같이 고생해왔던 팀장도 퇴사를 한다고 하니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팍 꺾여 버렸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일도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늘고 있지만, 경력있는 인력들이 이렇게 빠져나가니 나도 누군가에게서 배우면서 성장하기가 쉽지가 않고 이렇게 남아 있는 사람들만 고생을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구조가 되어버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다행히 임상시험 업계에서 쓰이는 기술이나 용어는 표준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쌓은 능력을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어서 이직이 수월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RO는 보상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경력있고 일잘하는 인력의 이탈을 절대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순 속에서 계속 유지되는 CRO 산업의 인력구조가 참 신기할 다름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값싼 신입 인력은 꾸준히 들어오고 회사는 기존의 사람을 대우를 더 잘 대해줄 생각이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이건 직업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회사를 나갈때 진심어린 피드백을 한마디 적어주고 싶다 - Treat your employees fairly
[관련 글] - 통계학 전공자가 미국 임상시험 회사(CRO)에서 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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